주민들 "주먹만한 불덩이 바람불 때 10~20m 번져"
평생 전셋집 살다 6년 전 새 집 얻은 노부부도 눈물
결혼기념일 이틀 앞둔 80대 "70년 추억 앗아가"
지난 4일 강원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에서 발생한 산불로 집이 모두 타버린 마을에서 박재호씨가 현장을 둘러 보고 있다. 최종권 기자
“외동딸이 지어 준 집인데 한순간에 불탔어요.”
5일 오후 강원 강릉시 옥계면 남양 1리에서 만난 김남순(75)씨는 잿더미로 변한 자신의 집을 보고 눈물을 글썽였다. 김씨의 집은 지난 4일 오후 11시46분 발생한 옥계면 산불의 발화 지점과 약 1.7㎞ 떨어져 있다. 이번 불로 나무로 지은 집이 전소돼 지붕이 주저앉고 모든 가재도구를 쓸 수 없게 됐다. 부산에 살던 김씨는 남편 박재호(84)씨와 13년 전 남양리로 이사를 왔다.
김씨는 “평생 전셋집을 살며 고생했다고 6년 전 딸이 1억원, 우리가 500만원을 보태 지은 집이 불이 붙은 지 10분 만에 없어졌다”며 “휴대폰과 통장도 모두 불에 타 살 길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4일 자정께 불이 난 사실을 알고 속옷만 걸친 채 황급히 밖으로 대피했다. 김씨는 “주먹 만한 불덩이가 강풍에 날리면서 이곳저곳으로 불이 옮겨붙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5일 오전 강원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에서 발생한 산불이 주택에 번져 타고 있다. [사진 독자제공]
전날 강릉 옥계면에서 발생한 산불로 남양리와 천남·주수리 등에 있는 주택 56채가 불에 탔다. 강릉시는 100여 명의 이재민을 현내리 경로당과 크리스탈밸리센터로 대피시켰다. 대피소에서 만난 천남리 주민 최순영(89)씨는 이번 화재로 70년간 살아온 보금자리를 잃었다. 기와로 지붕을 올린 이 집은 최씨 가족이 7대째 자리를 지켜왔다. 최씨는 “내일이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과 70주년 되는 결혼기념일인데, 마지막 남은 유산을 잃은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며 “환갑 때 자식들에게 받은 금목걸이와 팔찌를 집에 놓고 온 게 제일 후회된다”고 했다.
전화 한 통에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주민도 있다. 남양 1리에서 혼자 사는 고옥녀(84)씨는 전날 오후 10시에 잠들었다. 근처 야산에서 불이 난 지 1시간여 만에 불길이 코앞까지 번졌지만, 이 사실을 몰랐다. 고씨를 구한 건 근처 시멘트 공장의 통근버스 기사로 일하는 막내아들 김주한(50)씨였다. 아들 김씨는 “5일 0시10분쯤 시멘트 공장을 나와보니 남양리 근처에서 불기둥이 치솟는 걸 봤다”며 “곧바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대피하라고 소리쳤다”고 말했다. 고씨가 밖에 나와보니 집 뒤에 있는 밭과 마당까지 이미 불길이 번져있었다. 그는 “노령연금을 받는 통장 하나만 들고 겨우 집을 나왔다”며 “아들 전화가 1분만 늦었어도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고 안도했다.
전화 한 통에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주민도 있다. 남양 1리에서 혼자 사는 고옥녀(84)씨는 전날 오후 10시에 잠들었다. 근처 야산에서 불이 난 지 1시간여 만에 불길이 코앞까지 번졌지만, 이 사실을 몰랐다. 고씨를 구한 건 근처 시멘트 공장의 통근버스 기사로 일하는 막내아들 김주한(50)씨였다. 아들 김씨는 “5일 0시10분쯤 시멘트 공장을 나와보니 남양리 근처에서 불기둥이 치솟는 걸 봤다”며 “곧바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대피하라고 소리쳤다”고 말했다. 고씨가 밖에 나와보니 집 뒤에 있는 밭과 마당까지 이미 불길이 번져있었다. 그는 “노령연금을 받는 통장 하나만 들고 겨우 집을 나왔다”며 “아들 전화가 1분만 늦었어도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고 안도했다.
5일 오전 강원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에서 발생한 산불이 주택에 번져 타고 있다. [사진 독자제공]
남양리에 사는 정연표(83)씨 부부도 이번 불로 50년 동안 산 집이 한순간에 타버렸다. 정씨는 “타지에 사는 아들에게 전화를 받고 밖에 나가 보니 앞산과 뒷산이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며 “바람이 한번 불면 불길이 10~20m씩 번졌다. 휘발유를 뿌리면 불이 확 붙는 것처럼 확산 속도가 빨랐다”고 말했다.
목수 일을 하는 신계혁(87)씨는 집은 물론 장비를 모두 잃어 생계가 막막해졌다. 그는 “보일러를 갖출 형편이 되지 않아 장작을 떼서 생활했는데 이게 화근이 됐다”며 “장작에 불이 붙지 않았더라면 집이 타지 않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불이 확산하는 위급한 상황에서 현장을 지킨 주민도 있다. 천남리에 사는 장민송(41)씨는 5일 0시30분쯤 이웃을 통해 불이 난 사실을 알고 대피했다가 10분 뒤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장씨는 “자연경관이 좋은 천남리가 좋아서 3년 전 이사를 왔는데 집을 잃고 싶지 않아 혼자서 불을 껐다”며 “불기둥이 20~30m 높이까지 치솟는 바람에 불을 끄기가 쉽지 않았지만, 양동이를 수십번 나르며 집을 지켰다”고 했다.
5일 강원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에서 발생한 산불이 인근 마을을 덮쳐 주택과 비닐하우스를 태웠다. [사진 독자제공]
강릉=최종권·편광현 기자
cho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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