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이번주말이 추석이네요..
전 초등학교 4~5학년쯤부터 명절이 싫었어요.
아빠가 초가부장적인 경상도 장남이거든요.
울엄마는 외며느리셨구요. 제 평생 명절연휴에 외갓집 가본적 단 한번도 없습니다.
어릴땐 그게 당연한건줄 알았어요. 어릴땐 그냥 놀러온 사촌들이랑
맛난거 먹고 놀고 용돈받음 땡이니까요.. 근데 어느순간부터
왜 우리엄마만 일하지?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ㅎㅎ
명절 내내 아빠는 그냥 소파에서 명절특집프로나 보고 있고
고모들은 뭐 명절 밤이나 오는데 올때마다 울엄마가 상차리고 치우고.. 젠장..
그냥 본능적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4학년인가 5학년때부터 명절음식 하기 시작했던거 같습니다.
전 굽는거 담당.. 엄마가 튀기는건 위험하다고 튀기는거 하셨구요..
두부전 생선전 고기전 완자전 한 100개씩 굽고.. 손님들 드린다고 부추전도 굽고..
부산이라 생선도 엄청 구워요.. 조기 한마리만 딱 오리면 될것을
민어는 밀어준다고 올려야되고 도미는 도와준다고 올려야되고.. 납새미도 굽고..
아.. 생각만해도 급 스트레스가 오네요..--;;
이걸 초딩때부터 했으니 저도 명절음식 경력 20년은 되가네요..
무려 20년동안 고3때도 빠지지 않고 엄마랑 저랑 둘이서 명절음식 했어요..
울엄마 평생 맞벌이.. 아니 지금은 외벌이시구요..
울아빠 퇴직하고 집에서 노신지 10년이 넘어갑니다..
남동생이라고 한마리있는데.. 식용유 떨어졌다. 떡집가서 떡좀 찾아와라 정도의
심부름도 안해요.. 어릴땐 명절전날 친구들이랑 축구한다..
커서는 평소에 고향친구들 못만난다고 그 친구들 만나러 가야한다며 휭 나갑니다..
누굴 탓하겠어요.. 저렇게 키운 울엄마탓이지..
그덕에 전 확고한 독신주의자였어요.. 평생 보고자란 남성상이 이모양인데다
딸은 엄마팔자 닮는다던데.. 싶어서요..ㅎㅎㅎ
어쩌다보니 결혼해서 살고있는데 지금 남편이 연애때 우리 결혼할까 하고 첨 말했을때 제 대답이
나 결혼하면 울엄마 혼자 제사음식해야되서 안돼.. 난 결혼 안해 였어요...
아직도 신랑이 가끔 그이야기 합니다.. 엄청 신선한 거절이었다고..ㅎㅎ
신랑이 잘된거 같다며.. 자기네집은 제사안지내고 친가쪽 친적들이랑 교류 없어서
명절연휴에 그냥 놀다가 명절당일 오후되면 외갓집에 이모들 죄다 모인다고
명절전날 울집에서 음식하고 명절아침먹고 자기네집 가서 점심먹고 외갓집가서 놀다오자~
우린 천생연분! 이라며 절꼬셔서 진짜지? 정말이지? 결혼하고 말바꾸면 끝이라고..ㅎㅎ
확답을 받고 결혼했습니다..ㅎㅎ
결혼하고 첫명절.. 진짜 울집먼저 가서 신랑이랑 전 구웠어요..
울엄마 첨엔 엄청 어색해하시더라구요.. 사위한테 일시켜도 되나..하시면서요.
근데 뭐 워낙에 신랑이 일을 잘해서 전을 후다닥 다 구워놨더니
엄마가 이리좀 와보게..하면서 튀김보조를 시키시더군요.. 제가 전 구운거 다 정리하는 동안..
그 담번 명절이 되니.. 신랑이 갑자기 튀김기를 주문하더라구요..
튀김은 자기가 튀길건데 자긴 가스렌지에서 튀김튀기는거 무섭다며..ㅎㅎㅎ
그래서 자연스럽게 역할분담이 저는 전굽고.. 신랑은 튀김튀기고..
엄마는 음식 하나 끝날때마다 나오는 설겆이 바로바로하시고 나물,국,식혜..
이런 스킬필요한것들을 하는걸로 되었습니다..시간이 한 반으로 줄더라구요..
이상황에서 울아빠 여전히 티비보시고.. 남동생 친구만나러 나갑니다..
매형이 일하고 있는데..ㅎㅎ
딱 울신랑 기분이.. 명절에 쌔빠지게 일하는데 뒹굴거리며 노는 시누이 보는 며늘 기분이었겠죠..
명절 끝나면 저랑 신랑이랑 제 남동생 신나게 씹는게 일이었어요..ㅎㅎㅎ
평생 남동생 얄미웠는데 같이 씹어주는 사람 있으니까 스트레스가 팍 풀리더만요..ㅎ
그랬는데.. 암튼 그랬었는데...
그런 남동생이 올해 5월에 결혼을 했습니다.. 네. 울엄마한테 며느리가 생긴거죠..ㅎㅎ
지지난주에 가족행사가 있어 다같이 모인자리..
밥먹고 친지분들이랑 헤어지고 울가족.. 엄빠와 저희 부부, 동생부부만
커피숍가서 담소를 나누는데...
동생이란 놈이.. 우리집은 왜 제사 지내는거냐며.. 완전 유교문화가 어쩌고..
명절 스트레스가 어쩌고.. ㅎㅎㅎㅎㅎ 자기 마누라 눈치가 보여서 저러나싶긴한데
이게 미쳤나.. 제 귀를 의심했죠.. 평생 전한번 뒤집어 본적 업는 놈이..ㅋㅋㅋ
엄마가 정색하시면서 우리집은 제사 지내는 집이고 나 죽고 나면 없애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고...
그리고는 며느리에게
ㅇㅇ아.. 우리집 명절에 일하는데 나도 하고.. 언니(저)도 같이 하고.. 언니가 잘하니까
많이 힘들지 않다고.. 조금만 고생해달라고.. 부탁한다고..그러시더군요..
근데 그때...ㅎㅎㅎㅎㅎ
가만히 듣고있던 울신랑이..
장모님.. ㅇㅇ이(저) 임신해서 힘들어요.. 제가 할게요.. 그리고 처남이 해야지요...
순간 울엄마 빵터지고.. 올케도 빵터지고.. 내동생 어색하게 빵터지고..ㅎㅎ
와.. 전 진짜 결혼잘했구나.. 우리 신랑이 최고다..막 없던 사랑도 샘솟을라 그러더라구요..ㅎㅎ
무튼 이 일있고 정말 오랜만에 명절이 기다려지네요. 울동생이 우짤찌 궁금해서요..ㅎㅎㅎ
엄마눈치, 누나눈치는 안봐도 마누라 눈치는 보겠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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