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news.naver.com/mnews/article/003/0011394236?sid=104

최근 내 대대의 한 중대가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임무를 마치고 귀환했다. 한달 전 출전하기 전까지 활기찾고 웃음이 넘치던 대원들이 지금은 서로 말도 안하고 방탄복을 벗지도 않고 웃지도 않는다. 눈은 공허했고 메마른 우물처럼 어두웠다. 이 부대는 대원의 3분의 1이 전사했고 귀환한 한 대원은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더 두렵다고 말했다.

평생 수없는 죽음을 목격했다고 생각해왔다. 2015~2016년 1년 가까이 동부에서 근무하면서 수없이 많은 비극을 목격했다. 그러나 당시는 지금과 상황이 크게 달랐다. 전사자들 모두를 꼼꼼히 손질하고 사망 경위를 조사했으며 숨진 병사들의 이름을 모두가 공유하면서 그들의 사진을 소셜 미디어에 올렸다.

이번 전쟁은 그때와는 전혀 다르며 피해는 재앙적이다. 전사자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지도 못한다. 매일 수십명이 전사하고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끊임없이 슬퍼한다. 비교적 조용한 전국 모든 도시 중앙 광장에는 관들이 늘어서 있다. 뚜껑이 덮혀 있는 관의 모습이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잔혹한 전쟁의 가공한 현실을 대변한다.

아버지도, 전쟁 통에 친구들과 지인들도, 함께 일하던 사람들도,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온라인상으로 친분을 맺었던 수많은 사람들도 죽었다. 이들 모두 군인이 아니었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무기를 들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다.

페이스북에서 매일 수많은 사망기사를 읽는다. 아는 사람의 이름을 보면 이들이 기사와 책을 쓰고, 과학연구를 계속하고, 동물들을 돌보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자식들을 키우고, 빵을 꿉고 에어컨디션을 팔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전선으로 나가 부상하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받고, 목숨을 잃는 대신 말이다.

가장 충격을 받았던 죽음은 언론인 올렉산드르 마호우의 죽음이다. 참전 경험이 있고 두려움이 없고 용감했던 그를 온라인상으로 매일같이 팔로우했었다. 그가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린 글을 보면서 즐거웠다. 최소한 그가 살아있다는 표식이었으니까 말이다. 그의 삶은 내게는 바다의 등대와 같았다. 그런 올렉산드르가 전사하면서 모든 것이 끝장났다. 이렇게 한 사람씩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있다.

나와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 남은 것은 고통스럽지만 여전히 다른 군인들을 위해 대신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인다. 직접 총을 잡지 않았던 2014년부터 나는 내가 총을 쏘게 될 것이라고 느꼈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루한스크 지역 포스파나 근처 최전선에서 보낸 10월여 동안 죽음을 자주 떠올렸다. 다음 번엔 조용하고 차분한 죽음의 숨결이 내게도 닥칠 것으로 느꼈다. 그러나 당시 마음 한구석에선 이번엔 아니라는 목소리가 있었다.

지금 나는 북부 국경을 지키고 있다. 체르노빌 격리지역을 순찰하고 있다. 동부나 남부보다는 안전하지만 벨라루스 독재자와 가까운 탓에 심리적 압박이 크다. 우리 부대의 임무는 3월의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적이 키이우 북부를 점령하고 수도를 포격했던 일이다.

나는 언제든 치열한 전투에 달려들 준비가 돼 있다. 겁나지는 않는다. 조용한 공포란 없다. 처음부터 그랬다. 내 처와 아들은 키이우 시내 아파트 복도에 몸을 숨기고 공습경보와 폭음에 고통스러워하면서 잠이 들기도 할 때부터였다. 정말 미친 짓이다. 나는 세상 어떤 일보다 키이우의 아내와 아들과 함께 있고 싶다. 전방 어딘가에서 죽기보다 그들과 살고 싶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죽을 것임을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 루비콘강을 건넌 뒤로 나는 차분해지고 용감해지고 강해지고 더 안정됐다. 전쟁을 치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민간인의 죽음은, 특히 아이들의 죽음은 전혀 다른 문제다. 민간인의 목숨이 군인의 목숨보다 더 소중해서가 아니다. 다만 보통의 일상생활을 하던 중 러시아의 총구에 희생된 보통의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죽음은 미리 대비하기가 힘들다. 잔인한 고문, 집단 학살, 산산히 찢긴 어린이, 아파트 구내 마당에 묻힌 시신들, 주거지·극장·미술관·유치원·병원에 대한 미사일 공격에 대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두달 동안 지하실에서 숨어 지낸 어머니가 눈 앞에서 자식들이 숨져가는 걸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6살 소녀가 무너진 집더미 속에서 탈진해 숨져가는 걸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점령된 마리우폴에서처럼 이 나라의 누군가가 비둘기를 잡아 먹을 수밖에 없고 콜레라에 걸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웅덩이 물을 마실 수밖에 없는 걸 보면 어떻게 반응할 수 있을까?

소설가 커트 보니것이 말한 대로 전쟁이 계속되지 않는다고 해도 죽음은 일상이다. 그러나 죽음을 직접 목도하는 건 전혀 다르다. 우리 모두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21세기 현대사회에서 중세 시대의 끔찍한 고문을 당하며 죽기를 원치 않으며 전염병으로, 수용소에 붙잡혀 죽기를 원치 않는다. 우리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유다. 존엄한 삶만이 아니라 존엄한 죽음의 권리를 위해서 말이다.

우리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제대로 죽을 수 있도록 해달라. 러시아의 미사일이 새벽에 집을 때렸을 때가 아니라 때가 왔을 때 침대에서 죽을 수 있게 말이다．